시대물의 거장 조 라이트 감독이 만든 가슴 아픈 1930년대 두 연인의 사랑이야기 <어톤먼트>
1. 영화 <어톤먼트> 줄거리
브라이오니 탈리스는 소설가를 꿈꾸는 열세 살의 어린 소녀이다. 상상력이 매우 풍부하고 예민하고 섬세하며 자신 주변을 둘러싼 것들이 본인의 이해력 안에 잘 정리되어 있기를 원하는 소녀이다. 그런 소녀가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불쾌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 표정을 한 채로. 소녀의 눈길 끝에는 언니 세실리아와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 터너가 있다. 둘 사이의 계급차 때문에 감정을 숨기고 일부러 눈과 말을 섞지않는 로비와 그의 거리감 느껴지는 태도에 화를 억누르고 있던 세실리아가 어느 강렬하게 뜨거운 한여름 오후에 넓은 정원의 분수대 앞에서 마주친다. 로비 때문에 부서진 화분의 손잡이를 찾기 위해 세실리아는 로비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겉옷을 벗고 분수대로 들어가고, 로비는 그러지 말라고 세실리아에게 강하게 소리친다. 그녀가 들어갔다가 나온 흔들리는 물 표면을 로비는 마치 그녀를 쓰다듬듯이 만진다.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브라이오니는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그날 오후, 세실리아의 오빠와 한 사내가 저택에 돌아온다. 브라이오니는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사과편지를 몰래 읽는다. 그 편지에는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할 말을 지웠다 썼다 반복하다가 엉겹걸에 쓴 속마음, 그녀를 향한 야한 말이 쓰여있었다. 일기처럼 간직했어야 하는데, 로비는 실수로 브라이오니에게 그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한다. 브라이오니는 편지에 담겨 있던 처음 보는 야한 문장에 큰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그날 저녁 로비가 세실리아를 겁탈하는 장면을 목격하기까지 한다.(어린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저녁 식사 도중 탈리스 가에 휴가를 즐기러 와 있던 친척 아이들이 실종되고, 실종된 아이들의 누나인 롤라가 아이들을 찾으러 나섰다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한다. 집으로 돌아온 브라이오니는 그 장면을 직접 보았으며 강간범은 로비라고 주장하고, 로비는 그 길로 경찰에게 연행된다.
브라이오니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롤라가 강간당하는 모습을 얼핏 본 것은 사실이지만 남자의 얼굴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날 하루 세실리아를 향한 로비의 강압적인 모습(상상력과 강박성이 지나친 브라이오니의 관점에서)을 보건대, 강간범은 로비가 틀림없다. 어쩌면 로비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브라이오니는 어릴때부터 로비를 짝사랑했다. 로비의 관심을 끌기위해 구해달라고 소리치고는 강물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그녀를 구한 로비는 크게 화를 냈고 이후 둘은 사이가 멀어졌다. 분수대 앞에서 실오라기만 걸친 세실리아에게 고함을 치는 로비, 로비의 편지 속 음담패설, 그리고 도서관에서의 둘의 모습을 본 브라이오니가 치기 어린 마음에 로비를 매도하기 위해 쓴 '소설'이었지만, 이 어린아이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로비는 소아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좋은 평판과 전도 유망한 의사지망생이라는 사회적 입지를 모두 잃어버린 채 죄인의 신분으로 전쟁터로 끌려간다.
2. 결말 해석
영화는 브라이오니의 유년-청년-노년 시절,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인이 된 작가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인 '어톤먼트'를 발간하고 인터뷰를 한다. 소설의 내용은 그 날 탈리스 家에서 있었던 일부터 자신의 종군 간호사로 일했던 이야기까지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단, 세실리아의 로비의 마지막 이야기만 빼고 말이다.
브라이오니는 성인이 되어서야 그 날 저녁 일어났던 강간사건의 범인이 로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일어난 일이 순전히 자신의 상상과 편견, 질투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걸 깨닫고, 세실리아를 찾아간다. 세실리아는 그 날 이후로 모든 가족과 연을 끊고, 간호사가 되어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로비를 돌보고 있다. 로비와 마주친 브라이오니는 본인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빌지만, 매몰차게 쫓겨난다.
하지만 이 장면은 그녀의 상상 속 이야기이다. 브라이오니는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었다. 로비는 전쟁 마지막 날, 덩케르크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세실리아 역시 폭격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한 그 날 이후로 둘은 만난 적이 없고, 전쟁터에서 각자 생을 마감했다. 그 날 브라이오니가 거짓으로 증언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까. 이런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자 어톤먼트라는 소설을 쓴 브라이오니. 이 소설이 둘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관객들의 멘탈을 붕괴시킨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변명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일텐데 어쩜 기억을 잃어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을까 하는 애잔한 마음까지 드는 <어톤먼트>의 결말이다.
3. 출연배우, 캐스팅 비하인드
영화 <어톤먼트>는 이안 매큐언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원작은 이안 매큐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브라이오니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은 이 영화로 데뷔했으며, 이 대단한 소녀는 데뷔작으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최연소 후보가 된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조 라이트 감독과 <오만과 편견>에 이은 두번째로 함께 한 작품이며, 이후에도 <안나 카레리나>로 또 한번 호흡을 맞춰, 조 라이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브라이오니의 역할로 캐스팅 하려고 하였으나, 키이라 나이틀리가 성숙한 여인의 눈빛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은 제작자는 그녀를 세실리아 역에 캐스팅 하였다. 원작에서는 로비가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남자로 그려지고 있으나, 키 172cm의 제임스 맥어보이가 캐스팅 된 배경에는 조 라이트 감독의 강한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한다. 조 라이트 감독은 <오만과 편견>에서도 모성애를 자극하는 처연한 눈빛을 가진 제임스 맥어보이를 캐스팅 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고 한다.
4. 영화 수상실적, OST, 명장면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색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다수 평론가들이 그 해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로 뽑는 등 평단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영화의 OST가 매우 인상적이며, 음악 감독인 다리오 마리아넬리는 브라이오니의 타자기 소리를 이용해 극중 긴장감을 불어넣는 음악을 만들어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다리오 마리아넬리는 이 외에도 오만과 편견, 제인에어 등 서정적인 시대극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음악을 다수 만들었다.) 또한, 이 영화의 고전적인 파스텔 톤의 색감과 빛이 번진듯한 영상은 카메라 렌즈에 연한 살구색의 스타킹을 씌워 촬영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덩케르크 해변씬은 5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촬영되었으며, 2천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염원하는 병사들이 덩케르크 해변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의 노래는 Dear lord and father of mankin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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